흡연하면 인지 저하 속도 85% 빨라진다

기억력 감퇴는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디지털 도어락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거나 약속을 깜빡하는 일이 잦아지면 단순한 노화 이상의 신호일 수 있다.
최근 유럽 14개국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 결과,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높이는 가장 위험한 생활습관으로 흡연이 지목됐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진은 유럽 14개국 50세 이상 중장년 3만2000명을 최대 15년간 추적 조사해 흡연, 운동, 음주, 사회 활동 등 16가지 생활습관과 인지 저하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연구는 개인의 일화 기억과 언어 유창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특히 치매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두 인지 영역에 초점을 맞췄다.
연구 결과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최대 85% 빠른 속도로 인지 능력이 저하되는 경향을 보였다.
신체 활동이 활발하거나 음주량이 적고, 사회적 연결망이 강한 흡연자도 있었지만 흡연이라는 단일 요소가 인지 기능 저하에 미치는 악영향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했다.
반면 비흡연자 중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인지 저하 속도가 완만하게 나타났다.
연구를 주도한 미카엘라 블룸버그 교수는 “이 연구는 관찰 연구이므로 인과 관계를 확실하게 규명할 수는 없지만, 흡연이 인지 노화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특히 중요한 요인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조사한 건강한 행동 중에서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데 있어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흡연이 뇌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이유는 명확하다.
담배 연기에 포함된 유해 물질이 미세한 뇌혈관에 침투해 혈관을 경화시키고 산소 공급을 방해하는 데 더해, 만성 염증을 유발해 신경세포 손상을 가속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억과 언어를 관장하는 주요 뇌 영역이 더 빨리 위축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희망적인 결과도 있다.
금연에 실패한 경우라도 규칙적인 운동, 사회 활동 참여, 적정 음주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병행하면 인지 저하 속도를 다소 늦출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한 흡연자들은 인지 저하 속도가 비흡연자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금연이 가장 효과적인 인지 저하 예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 개인의 생활습관이 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유럽 14개 국가에 거주하는 중·노년층의 건강한 생활습관과 인지 저하’다.
김용현 (kor3100@sabanamed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