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버그 사라진 게 아니다…1마리당 알 500개, 내년 대량 발생 우려”

한여름 도심을 뒤덮으며 시민들의 일상에 불편을 끼쳤던 러브버그, 정식 명칭으로 붉은등우단털파리가 최근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땅속에 잠들어 있을 뿐”이라고 경고하며, 내년 더 심각한 대발생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러브버그는 이미 땅속에 수백 개의 알을 남겼고, 그 유충은 토양 속에서 1년 가까이 생존한 뒤 다시 성충으로 나타나게 된다.
올해는 특히 인천 계양구 등 수도권 지역에서 그 발생 규모가 이례적으로 컸던 만큼, 일시적인 소강세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천시 계양구보건소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 동안 접수된 러브버그 방제 민원은 총 473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62건) 대비 7배 이상 급증했다.
그러나 7월 들어서는 급격히 감소해 1일부터 11일까지는 31건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민들은 한동안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줄 정도로 몰려들던 러브버그가 갑자기 줄어들자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일시적 침묵’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러브버그 성충은 성충기 활동 기간이 약 일주일에 불과하며, 활동 후 곧바로 번식을 마치고 사라지는
습성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남긴 알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러브버그 암컷 한 마리는 평균 300~500개의 알을
산란하며, 이 알들은 곧 유충으로 부화해 땅속에서 10개월 이상 생존한다.
유충은 토양 유기물을 섭취하면서 서서히 성장하고, 이후 번데기 과정을 거쳐 내년 초여름 다시 성충으로
출현하게 된다.
이처럼 알에서 유충까지의 생애 주기를 땅속에서 보내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개체 수가 줄어든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상 내년 폭증을 위한 준비 기간에 들어간 것이다.
김민중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박사는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졌다고 단정해선
안된다”며 “올해 어떤 기후 조건이나 토양 환경이 러브버그 생존율을 높였는지에 대한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러브버그는 기온이 상승하고 습도가 높을수록 활동이 활발해지는 곤충으로, 최근 지속되는 기후변화와 도시 녹지 확대로 인해 발생 조건이 더욱 유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러브버그의 활동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김동건 삼육대 환경생태연구소장은 “러브버그는 도시 내 녹지축을 따라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2022년 서울 은평구를 시작으로, 올해 인천 계양구에서 대량 발생했는데, 내년에는 서울과 수도권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아파트 베란다, 주차장, 차량 앞유리에까지 러브버그가 달라붙는 등 실생활 피해가
발생했으며, 어린이와 노약자에게는 정신적 불편과 위생 우려까지 제기됐다.
천적 부족도 문제다. 온라인에서는 참새, 사마귀, 잠자리 등 천적 곤충이 러브버그를 잡아먹는다는 목격담이
퍼졌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김 박사는 “러브버그만을 선호해 잡아먹는 특수 천적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현재로서는 자연 생태계 내에서
이들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의미한 포식자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방역 작업이 사실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자연 생태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러브버그가 주로 서식하는 곳은 자연 녹지나 공원, 하천변 등의 생태 공간으로, 이곳에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은 다른 생물의 생태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따라 김 소장 등 전문가들은 러브버그의 생태적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해, 천적 생물을 인위적으로
개발하거나 사육해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소장은 “과거 외래 해충인 꽃매미가 전국적으로 퍼졌을 때도 결국 기생벌이라는 천적의 등장으로 자연스러운 개체 수 조절이 가능했다”며 “러브버그에 대해서도 연구 기반을 구축해 생물학적 방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 당장은 줄어든 듯 보이지만, 1마리가 500개의 알을 남기는 러브버그의 생태 특성을 고려하면 내년 여름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
올해 갑작스러운 대량 발생이 단순한 일회성 이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심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방역 정책과 생태 기반 연구가 병행돼야 할 시점이다.
이소율 (lsy@sabanamedia.com) 기사제보